십 분의 여유

십 분의 여유

이곳으로 이사한 후, 외출할 때면 광역버스를 이용한다.

아파트 담 길을 지나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내리막길 모퉁이를 돌아가면 버스가 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뛰어가면 탈 수 있는 거리에서 눈 앞에 빨간색 광역버스를 놓치는 날이면 하루 종일 억울한 기분이 든다. 10분을 기다려야 다음 버스를 탈 수 있는 이유도 있지만 내 것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 같아서 빨간색 버스가 보이면 무조건 뛰게 된다.

내리막 모퉁이 길을 돌아서는데 빨간색 버스가 오는 게 보인다. 그런데 오늘은 뛸 수가 없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아프더니 오늘은 별나게 더 아프다. 의사선생님은 특별한 약이 없으니 운동을 하고, 살을 빼고 아플 땐 소염 진통제를 먹으며 살살 달래면서 조심조심 살아가란다. 이제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걱정과 염려가 앞선다. 아직 해야 할 일도 많고, 가야 할 곳도 많은데 뛰어가서 버스를 탈 수 없는 이런 몸으로 어찌 살아가야 할까 두려움에 머리가 복잡해 진다.

타야 할 버스를 보내면서 어릴 적 바닷가에서 모래놀이 할 때가 생각났다. 욕심껏 한 주먹 가득 모래를 움켜 쥐었지만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흘러 내릴 때의 서운함, 손을 폈을 때 내 손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던 허전함. 지금 꼭 그런 기분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주먹에 쥐었던 모래는 내 것이 아니어서 그것이 흘러 내려 내 손 안에 남아있지 않아도 서운해 할 일은 아니었다. 버스를 눈 앞에서 놓치는 것도 조금만 더 일찍 집을 나섰으면 될 일이었지 그렇게 억울해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점점 욕심이 많아지고 내 의지대로만 하려는 욕심쟁이가 돼가고 있었다.

온갖 염려로 복잡해진 머리를 식힐 겸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십 분의 여유를 즐겨보기로 했다.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 어제 내린 비와 바람으로 잎이 떨어져 온통 노란 길이 되었다. 매일 바쁘게 지나다니던 길을 아픈 무릎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본다. 푸르고 높은 상쾌한 하늘, 뺨을 스치는 적당히 차가운 바람,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엄마의 사랑스러운 표정,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닮은 뒷모습, 동네 작은 슈퍼아저씨의 사람 좋아 뵈는 눈 웃음… 바쁘게 걸어 다닐 때는 모르고 지나쳤던 일상들이 복잡한 마음에 평안을 준다. 참으로 감사한 느낌이다. 빨리 걷지 못하면 어떠냐 천천히 걸으면서 소소한 평안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찾고 순간순간에 감사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을.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염려하기 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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