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우리 지명의 문제점과 지명학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사람에게만 이름(Name)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온갖 사물에 그러하듯이 땅에도 지명(地名)을 붙인다.

종류별로 뭉뚱그려 붙이는 것은 명사(名詞; Noun)에 불과하지만, 그 중 특정한 것에 특정한 이름을 붙이면 고유명사(固有名詞; Proper Name)가 된다.

땅의 입지적 특성뿐 아니라, 인간의 이용 목적이나 분할 점거의 상태 등등에 따라 특별한 명명하는 것은 어떤 생물체도 흉내 낼 수 없는 오로지 인간의 몫이다.

이러한 지명은 고대 언어 자료로서의 큰 가치는 물론, 인류의 이동 경로나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 데도 유용하다. 즉, 각국의 언어나, 역사, 지리 등, 인문학 전 분야와 생물학 등에까지 영향을 주는 귀중한 자료다.

이렇다 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깊이나 방법론 상의의 차이는 있지만, 고대지명에서 현대지명에 이르기까지 조사 및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러한 학문 분야가 소위 아너매스틱스(Onomastics; Onomatology; 命名學)의 한 갈래로서 ‘지명학(地名學, Toponymy; Toponomastics)’이다.

자연물이나 지형을 의미하는 토포님(Toponym)은 때로는 땅에 붙여진 이름-지명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명학은 특정 지명에 어떤 뜻이 있는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전승되어온 비공식적 지명과 행정적 필요에 따라 붙여진 법제지명의 유래를 더듬다 보면, 사회적·행정적 기능에 어떻게 작용하였는가 규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엔 어떤 곳이었으며,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였는가를 유추해낼 수 있는 언어나 문화의 발달상까지 탐구하게 하는 어엿한 학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명은 조상의 생각과 지혜, 생활 모습과 철학 내지는 의지, 언어·풍속·윤리·종교 등에 이르기까지, 문화 발전의 역사와 양태를 알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가 된다.

우리나라도 최근 그러한 움직임이 있지만, 세계 각국에서는 없어지거나 변질된 옛 지명을 회생시키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1896년에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땅과 관련하여 몇 가지 기록에 남을 만한 일이 생겼다.

이 해에 제정된 일본 민법에 ‘부동산(不動産)’이란 어휘가 처음 등장한 것이다. 동산(動産)과 상반되는 법률용어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 없는 재산, 즉 토지와 그 정착물이란 뜻이다.

프랑스어 ‘immobiliers’이나, 독일어’ Immobilien’ 모두 ‘부동의 것’이란 의미라고 한다. 한자의 본토인 중국에서는 ‘방지산(房地産)’인데, ‘방(房; 집)’과 땅을 의미한다. 이 일본식 한자용어 ‘부동산(不動産)’이 2년 뒤인 1898년 대한제국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한편 조선(朝鮮) 고종(高宗) 33년이자 건양(建陽) 원년(元年)이기도 한 1896년 1월 1일자로 우리나라에서는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2월 11일에 고종 임금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소위 ‘아관파천(俄館播遷)’을 감행하였다. 아울러 8월 4일 조선의 지방제도를 23부에서 13도로 개편하는 칙령을 반포하였다.

지방행정기구가 8도제에서 23부제를 거쳐 1896년에 13도제로 개편되면서, 지금까지 사용되는 일부 지명이 변경된 것이다. 이후 오늘날까지의 지명을 지명학에서는 ‘현대지명’이라고 분류한다.

경기도 금천(衿川)이 시흥(始興), 양주(梁州)가 양산(梁山)으로 바뀐 것이 이 때다. 강원도 낭천(狼川)은 화천(華川)으로 , 경남 산음(山陰)은 산청(山淸)으로 변경되었다.

그 뒤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1914년에 우리나라에서 또 다시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는데, 317개의 군(郡)이 220개로, 4,322개의 면(面)이 2,518개로 축소되면서, 지명도 대폭 변경되었다.

예컨대 현재의 양평(楊平)이란 명칭은 당시 양근군(楊根郡)과 지평군(砥平郡)의 통합으로 생겨났다.

이 밖에도 일제 강점기 내내 한성(漢城)이 경성(京城)으로 바뀌는 등, 지속적으로 조그만 동명(洞名)까지도 대부분 일본식으로 바뀌면서 우리의 고유 지명이 유린당했다.

북한 땅에서는 분단 후, 김정일의 호인 ‘샛별’군 같은 인물지명과, 5·1노동자구 같은 날짜지명, 선봉리(先鋒里)·개혁동(改革洞)·붉은거리·영웅리 같은 구호지명(口號地名) 따위의 이념적 조작적 지명까지 생겨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을 한다면서도, 대부분 정치적 사건에만 함몰되어, 아직도 한강의 강섬을 ‘중지도(中之島)’, 여의도에는 ‘윤중(輪中’)이란 학교 이름이 붙여져 있고 윤중제 따위의 일본식 이름으로 버젓이 축제를 벌이고 있다.

여기에다가, 법정동(法定洞)과 행정동(行政洞)은 또 무엇인가? 동사무소의 관할 구역으로 편의상 통합한 것이 행정동이라 한다는데, 예컨대 종로1·2가동이라는 행정동 안에 종로1가동·종로2가동을 비롯한 17개의 법정동이 들어 있다.

뿌리 깊은 지명이 없어지면서 어떤 동에는 일련번호로 10이 넘는 숫자 동이 있기도 하다. 구로본동…구로2동…구로5동…신림11동….

태그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