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 전에 호(號)를 생각해보세요

우리의 경우 호(號)는 삼국시대부터 나타난다고 한다. 신라의 승려 원효(元曉; 617~686)대사의 경우 ‘소성거사(小性居士)’, ‘복성거사(卜性居士)’등이 호처럼 불리우며, 신라시대 가야금의 명수 ‘백결선생(百結先生)’ 등이 그 예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호는 자신이 짓기도 하고, 남이 지어주기도 하였다. 존경하는 스승이 내려준 호는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스스로 짓는 호에는 살아가고자 하는 뜻을 담는 것이 좋겠다.

호를 만드는 원칙이 있었을까? 신용호(申用浩) 선생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 소처이호(所處以號): 생활하고 있거나 인연이 있는 처소를 호로 삼은 것. [아산 정주영, 栗谷 이이…]
  • 소지이호(所志以號): 이루고자 하는 뜻을 호로 삼은 것.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太任)을 본받는다는 뜻의 신사임당(師任堂)…]
  • 소우이호(所遇以號): 처한 환경이나 여건을 호로 삼은 것. [退溪 이황…]
  • 소축이호(所蓄以號): 특히 좋아하는 것을 호로 삼은 것. [시/거문고/술 세 가지를 좋아한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이규보…]

호(號)를 만들 때 보통 두 자 또는 세 자인 경우가 많다. 김정희의 호 중에는 ‘향각자다처로향각노인(香閣煮茶處鱸香閣老人)’ 같은 10자도 있었다.
현대시인 김상옥(金相沃; 1920년~2004)의 경우, 대표적인 호가 ‘초정(草汀·艸丁·草丁)’이지만 한자 표기가 세 가지나 되었다.  또한 당호(堂號) ‘초초시실(艸艸詩室)’을 바탕으로, ‘초초시실주인(艸艸詩室主人)’이라는 6자도 사용하였고, ‘칠수삼과처용지거주인(七須三瓜處容之居主人)’의 10자도 알려져 있다.
순수한 우리글로 지은 호 중에는, 가람 이병기(李秉岐), 외솔 최현배(崔鉉培), 늘봄 전영택(田榮澤) 등이 유명하다.

호(號)는 학문이나 예술에서 일가(一家)를 이루거나 덕이 있어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 가지는 영예이고 하다. 스승이나 가까운 친구, 때로는 스스로 짓기도 한다. 다 괜찮다.

남이 지어주는 경우는 화려해도 좋지만, 스스로 지을 경우에는 좀 겸손하게 낮추거나 자신의 희망이나 의지를 담는다. 이러한 호를 얻게 되면 제자나 주변 사람들은 호를 부르지, 자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이 예법이었다. 그 호도 남들은 높여서 ‘아호(雅號)’라 여쭙는 것이 예법이었다.
여성의 경우도 신사임당(申師任堂)·허난설헌(許蘭雪軒) 등과 같이 당호를 얻은 사람도 적지 않다.
부모님이 공들여 지어주신 이름-본명의 가치를 스스로 보호하고 남들이 부르기 쉽고 뜻도 담겨 있는 호 하나 쯤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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