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 개명? 아호? 예명? 필명? 별명?

신라의 김알지(金閼智) 등등 선인들의 출생설화는 대부분 이름을 지은 유래로부터 시작된다.
여러 설이 있지만, ‘이름’이란 ‘이르다[謂]’는 동사의 명사형이거나 적어도 유래는 같은 단어일 것이다.

이름에는 종류도 많다.
관례(冠禮)를 치르고 어른이 된 뒤 보통 항렬에 따라 짓는 정식 이름인 관명(冠名) 외에도 아명(兒名)·자(字)·호(號)·별호(別號)·택호(宅號)·예명(藝名)·당호(堂號)·시호(諡號) 등이 있다. 서양에서도 예명(藝名)·필명(筆名)·세례명(洗禮名) 등이 있다.

나면서부터 가정에서 불려지는 아명은 역신(疫神)의 시기를 받지 않도록 천하게 짓기도 했다. ‘개똥이’, ‘돌바우’ 등이 그 예이다. 홍역을 치를 나이가 지나면 이제 살았다는 의미인지, 비로소 이름을 족보에 올리면서 정식이름인 관명(冠名)을 지어 부르게 된다. 그러나 아무나 함부로 부르는 것은 피하고,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할만한 나이가 되면(보통 20세), 머리를 빗어올려 상투를 틀고 관모를 쓰는 의식인 관례(冠禮)를 치르고 또 하나의 새로운 이름인 자(字)를 얻어, 가까운 친구 등이 허물없이 부르게 된다.

여자의 경우 성인이 되었음을 뜻하는 의례는 계례(笄禮)이다. 혼인을 정하고 나서나,  15세가 되면 계례를 행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어머니가 중심이 되어 예법을 아는 가까운 부인을 주례로 삼았는데, 주례가 계례자에게 비녀를 꽂아주면 방으로 가서 배자(背子)를 입는 등의 간단한 예를 올렸다. 이 떄 주례가 계례자에게 자(字)를 지어주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남자의 관례만큼 보편화되어 있지는 않았던 듯, 남자의 관례와 달리 여자의 계례는 보통 혼례 속에 흡수되었다. 신부집에서 대례를 행하며,  신랑이 신부집 앞마당에 들어선 뒤 머리를 빗기기 시작하여, 쪽을 틀고 비녀를 꽂는다. 이 시간 동안 신랑은 전안지례(奠雁之禮)를 행하고 대례상 앞에 서서 30분 이상이나 기다렸다. 신부의 족두리와 댕기, 원삼은 신방(新房)에서 신랑이 벗겨주었다. 즉, 계례를 치루며 처음 머리를 올리고 신랑을 보는 것이 관습이었던 것이다.

택호(宅號)는 흔히 새로 시집온 여자를 부르는 이름으로 출신 지역을 따서 어른들이 부르기 좋게 지었다. 광주댁 같은 것도 택호의 일종이다.

시호(諡號)는 벼슬이 높거나 공로가 큰 사람이 사망한 뒤, 나라에서 서훈(敍勳)하여 받드는 이름이다. 묘당(廟堂)에서 업적에 맞게 짓는 경우도 있지만, 왕의 이름으로 내린 경우도 많다.역대 임금들의 왕호(王號)도 일종의 시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한 사람이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이 지어준 본명(本名)을 아무나 함부로 부르는 것을 피하는 관습, 즉 ‘實名敬避俗’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김정희(金正喜)는 잘 알려진 ‘추사(秋史)’ 외에도 완당(阮堂)·예당(禮堂)·시암(詩庵)·노과(老果) 등 무려 503개나 되었다는데, 붓을 잡을 때 처한 상황이나 정서를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호 대신 예명이나 필명(筆名; penname)도 많이 쓰이지만, 옛 선인들의 경우 제법 양반 축에 드는 이라면, 본명 외에 어릴 때의 아명(兒名), 결혼 후 성인이 된 뒤엔 자(字), 학자나 예술인들의 아호(雅號) 또는 당호(堂號)가 있었다. 아호란 그럴 만한 대접을 받을 만한 분들의 호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당호는 본래 집[正堂과 屋宇]에 붙인 호인데, 그 건물에서 생활하는 주인을 일컫기도 하여 아호처럼 쓰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지명- 예컨대 천안 출신 아주머니를 천안댁 등으로 부르는 이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전통의 또 다른 변형이 펜네임, 예명, 영문 이니셜 약칭 등이라 할 수 있겠다. 요즘엔 인터넷 상의 아이디가 이를 대체하고 있는 것일까? 연세 지긋하시거나 사회적 지위가 있는 분들의 성함을 존칭없이 함부로 부르기 저어될 때 적당히 부르기에 좋아서, 유명인일수록 이러한 또다른 이름이 확산되고 정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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