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JSA) 판문점 시찰과 비무장지대(DMZ)

공동경비구역(JSA) 판문점 시찰과 비무장지대(DMZ)

DMZ(非武裝地帶)는 ‘국제조약이나 협약, 협정에 의하여 무장이 금지된 완충지역’이다. 주로 적대국 군대간 무력충돌 방지나, 운하나 수로 같은 교통를 확보를 위해 설치된다.

인도차이나반도에서는 베트남의 북위 17°선의 휴전선 기준, 남북으로 각각 5km의 지역이 비무장지대로 설정된 적이 있었다. 현재의 한반도에서는 휴전선 남•북으로 각각 2 km의 지대가 모든 군사시설의 설치가 금지된 비무장지대이다.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 1953년 7월 27일 군사분계선이 확정되고, 이어서 8월에 ‘민간인의 비무장지대 출입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져, 남쪽 비무장지대에 ‘자유의 마을’과 북쪽에 ‘평화의 마을’이 조성되어 각각 민간이들이 거주하고 있다.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는 반세기 이상 인적이 끊겨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이라, 앞으로 학술 연구는 물론 여러가지 활용가치가 클 것으로 벌써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흔히 판문점으로 불리는 공동경비구역(JSA ; Joint Security Area)은 이 비무장지대 안에서도 특수구역이다. 군사정전위원회 유엔사령부(UNC; United Nations Command)측과 공산측(북한, 중국)이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를 원만히 운영하기 위해 1953년 10월 군사정전위원회 본부구역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상에 설치한 동서 800m, 남북 400m 장방형의 지대이다.
한국군(350여명)과 미군(250여명)으로 구성된 유엔사령부 경비대대가 북과 함께 관할하고 있다.
본래 목적은 군사정전위원회 등의 ‘휴전 상태’를 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곳이지만, 적십자회담 등, 남•북한간 접촉과 회담이나 남북을 왕래하는 통과지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국토 분단과 동족간의 전쟁이라는 우리 민족의 쓰라림을 되새기는 산교육장이기도 하다.
6•25 전 널문(板門)은 초가집 몇 채가 전부인 외딴 마을이었다. 여기 빈 땅에 천막을 치고 시작한 한국전쟁 휴전회담이 1951년 10월부터 1년 9개월이나 진행되면서, 판문점은 전 세계에 알려졌다. 휴전에 대해 합의가 마무리돼가면서 부근에 목조건물을 지었다가, 1km 남쪽의 현재 위치로 다시 이전했다고 한다.
현재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에 위치한 판문점은 북한 주소로는 개성직할시 판문군 판문점다. 개성시에서 10Km 거리지만, 평양에서는 215Km나 된다. 서울에서 서북방으로 62Km 지점으로, 우리 대표단이 교통신호 조절을 받으며 자동차로 달리면 1시간도 채 안걸린다.

비무장지대에서는 남-북 상대방의 출입은 제한적이지만, 쌍방의 공동경비구역은 허가받은 인원이 출입할 수 있다.
1976년 8월 18일 북한군의 도끼만행사건 이전, 쌍방 관계자들은 이 구역 내에서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양측간 충돌 방지를 위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상대측 지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북한군을 만나거나 말을 거는 것도 금지되었다.
그러나 2000년 박찬욱 감독이 만든 영화 JSA의 소재가 되었던 것처럼, 근무기간이 오래돼 안면이 있는 사병들끼리는 대성동 마을 등 CCTV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담배와 술 같은 물품을 교환하는 하는 등 접촉을 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인 관광객 및 내국인 단체(30~43명)에 한해서 결격사유가 없으면 관람이 허용된다. 옛날 경의선 장단역사, 버려진 기관차 등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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