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불교와 티벳불교 개요

우리나라 불교를 대체적으로 구분하면, “정토신앙”과 간화선 중심의 “선불교” 전통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최근에는 남방불교 계열로 미얀마 등지에서 들어온 위빠사나 수행 방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정토신앙은 사후에 불국토에 태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과 같은 초월적 존재의 가피력(加被力; 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려고 주는 힘)을 기원하는 수행 위주의 기도와 여러 종교적 의례를 중요시한다.

전통적 선불교는 참선수행과 명상적 경험을 통해서 깨달음에 도달하려 한다. 그러나 교학적 훈련에 빠지기 쉬운 우리 불교의 선불교 수행은 자칫 자가당착에 빠지기 쉽다는 지적이 있다. 깨달음이 아닌 것을 깨달음으로 오인하거나, 필수적인 종교적 덕목을 함양하는 대승적 종교생활을 소홀히 하면서 돈오 수행에 대해 집착하면, 수행의 시작, 중간, 목표가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불교신자가 아닌 일반 명상가에도 관심을 끄는 위빠사나 수행는, Pali어로 된 경전 연구와 별도로 “mindfulness” 명상이 수행의 핵심을 이룬다.

이와 달리 불과 20세기 중반이 넘어서야 알려지기 시작한 티벳불교에서는 대승불교 전통과 연속선상에서, 논리학, 중관, 유식의 논서들을 통해서 교학적 훈련과 학습이 이루어진다.
수행 방식에에서도, “mindfulness”류의 명상만이 아니라, 중관과 유식에서 천명하는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대승불교적인 사마타, 위빠사나(=>止觀)수행과 밀교적 전승인 금강승 수행으로 이어진다.

이와 더불어, 닝마파나 카규파에서 전폭적인 의식의 도약을 특징으로 하는 불성 및 여래장 사상에 근거해 직접적으로 깨달음도 목표로 한다. 그런 돈오적인 수행법들은 스승의 구전口傳과 본존불의 가피력을 기반으로 시작된다.

​천 년이 넘는 전통의 티벳불교가 바깥세계에 소개되기 시작하자 신비로움이 벗겨지며, 티벳이라는 특별한 환경에서 발달된 대승불교 전통이 많이 알려지고 있다.

밀교적 전통에서는 수행자와 부처님의 합일을 상징하는 만달라를 관상함으로써, 오염된 중생의 세계를 청정한 부처의 확장된 세계로 변형시키는 깊은 수행이 진행된다. 여기에 비밀스런 요가적 행법이 수반되면서, 신구의(身口意)로 구성된 수행자의 전폭적인 정화와 변형이 이루어지고, 최종적으로는 수행자 자신이 관상의 대상인 본존불(本尊佛) 자체의 화신으로 변형된다.
그럼으로써 세계는 본존불이 머무르는 청정한 불국토로 변형된다는 것이다.

​티벳불교는 많은 수행자들이 수십 년 내지는 평생에 걸쳐 종교적 수행에 전념했고,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의 영적 수행법들이 알려졌다. 밀교적 전승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티벳불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보살행”이다. ​일체 중생이 열반에 이르러 영원한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부처의 일체지를 열망하는 대승불교 수행은, 궁극의 영적 완성을 향해 노력하는 수행전통을 가능하게 한다. 일체 중생을 향한 책임에 대한 자각, 시작을 알 수 없는 무지와 고통에 대한 자각을 기초로 하고, 부처의 세계를 향한 지극한 헌신으로 깨달음의 마음, 즉 보리심을 일깨우고 완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오랜 기간 신비에 쌓여있던 탓인지, 무르익지 않은 수행자들과 일부 학자들의 편견에서 비롯된 부스러기가 적지 않다는 충고도 있다.
특히 외부 사람이 티벳불교를 접하는 초기에는 그런 군더더기들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 만큼 오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맹목적 또는 미신적인 관습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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