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예독왕(孤詣獨往)’ 박노수 가옥- 미술관으로 단장

박노수(藍丁朴魯壽; 1927~ 2013) 화백은 1946년 서울대학교 제1회화과(한국화) 첫 입학생이었다. 재학 중에 김용준(金瑢俊), 노수현(盧壽鉉), 장우성(張遇聖) 등에게 배웠으며, 특히 이상범(靑田 李象範)을 사사했다고 알려져 있다. 국전(國展)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선적(禪的)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독특한 화풍을 개척했다.

박화백은 정부수립후 1949년에 처음 열린 국전에 ‘청추(晴秋)’를 출품하여 입선했다. 특히 제4회 국전에서 ‘선소운(仙簫韻)’을 출품, 동양화부문 최초로 대통령상을 받으며 20대의 젊은 나이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에도 1981년 마지막 국전(30회)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고 한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선생이 젊은 박노수 화백에게 화두처럼 던진 ‘고예독왕(孤詣獨往; 외롭게 홀로 가는 작가의 길은 고독하다)’이라는 글귀가 평생의 지침이 되어 외로운 예술가로서  탈속한 그의 작품세계를 대변해주는 말이 되었다고 전문가들은 평한다.

2003년에 뇌수종으로 병석에 누워 있을 때인 2004년 그의 첫 화집이 출간되었고, 1955년부터 박화백이 언론에 기고했던 200여 편의 글 중에서 발췌한 ‘화필인생’이 출간되었다.
젊은이들에게는 배우 이민정의 외할아버지로도 잘 알려진 고 박노수 화백이 40년간 살던 옥인동 집은 지금 종로구립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이며 근대문화유산으로, 2013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 개관한 것.

본래 주택이었던지라, 보수를 했음에도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정감으로 느껴지는 꽤 낡은 건물이다.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을 15명으로 제한해서 입장시키고 있다. 그래도 미술관을 찾은 손님들의 수준이 있어 어른 입장료 2000원과 함께 불평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24세까지는 청소년이 요금이 적용된다는 점도 재미있다.
관람 마치고 나와서 뒷마당으로 올라가면 나름 분위기 있는 뜰에서 앉아 있을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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