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속성’- 무상(無常)과 무아(無我)

불교의 근본 가르침에 맞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내지는 철학적 슬로건이랄 수 있는 핵심적 토대가 ‘존재의 속성’에 관한 해탈관이다. 위파사나(vipassana) 명상에서 통찰 관조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형체가 있는 모든 사물과 모든 현상(dhamma; 법)이 가지고 있는 존재의 보편적 특성- 무상(無常, anicca), 고(苦, dukkha), 무아(無我, anattā)가 그것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삼법인(三法印; 무상, 고, 열반) 또는 사법인(四法印; 무상, 고, 무아, 열반)으로 설명한다.
법인(法印), 즉 관공서의 도장이나 법적 인감처럼 어떠한 교설이 불교의 근본적 교리(佛說, buddha-vacana)에 맞는지 판가름하는 잣대란 의미다.
한문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삼법인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인데, 여기에 일체개고(一切皆苦)를 포함시키면 사법인이다.
이 개념의 바탕은 싯다르타가 깨달아 부처님이 되신 내용의 핵심인 ‘연기'(緣起; 빨리어 Paticcasa muppada)다. ‘왜 죽는가’ 하는 존재의 원리인 연기를, 인간을 포함한 개별적 존재에 적용하면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변한다. 나도 변하고 대상도 변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이렇게 항상 일정한 것은 없다는 것이 바로 ‘무상(無常)’이다.
티베트의 성자 말라레빠의 시 한편 인용한다.

세상 모든 것 덧없고 무상하여 / 나는 불멸의 행복 찾아 수행에 정진하리. / 아버지 살아계실 때 내 나이 어렸고 / 내가 성인이 되니 그분 이미 세상에 안계시네./ 우리 함께 있었다 해도 영원을 기약하진 못할 것 / 나는 불멸의 행복 찾아 수행에 정진하리./ 어머니 살아계실 때 나는 집을 떠나 없었고 / 나 이제 돌아오니 그분 이미 세상에 안계시네./ 우리 함께 있었다 해도 영원을 기약하진 못할 것 / 나는 불멸의 행복 찾아 수행에 정진하리./ 경전이 있을 때 공부할 사람 없었고 공부할 사람 돌아오니 경전 이미 낡고 헤졌네./ 우리 함께 있었다 해도 영원을 기약하진 못할 것 / 나는 불멸의 행복 찾아 수행에 정진하리.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것에 절대적이고 독립적 존재도 없다. ‘나’라고 하는 실제가 없다는 것이 ‘무아(無我)’다. 불교의 가장 궁극적인 문제인 ‘무아’에서 ‘나’가 없다는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공동으로 연관되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일체가 무상한데 사람이라고 변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며, 영원불변하는 자아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무아는 사상적 표현이지 인간의 정신적 상태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마스타니 후미오)
즉,  현실적으로 생멸변화(生滅變化)하는 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고정불변하는 실체나 본체, 혹은 실체적인 아(我)가 없다는 말이다.

무상하고 무아이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 고(苦)다.
무상과 무아를 모르는 것이 무명이다. 이를 깨닫는 순간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가 ‘적정’이다. ‘열반적정’은 불교의 이상적인 경지인 열반을 가리키는데, 불교의 목적론 혹은 행복론이랄 수 있다.

변하는 것 자체를 멈추게 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때문에 변화 자체를 인정하고 새로운 활로를 찾을 때 무상의 의미는 제대로 전달된다.
부처님은 열반 직전 아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마하파리닛바나숫탄타)

“그러므로 아난아, 너희는 이제 자기를 섬으로 삼고, 자기를 의지처로 하여 남을 의지처로 삼지 말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法)을 의지처로 하여 남을 의지처로 삼지 말라” (法燈明 自燈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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