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1990)

러시아는 참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나라다.

경제구조나 정치체제까지 다르다보니 어설픈 지식으로는 장님 코끼리 어루만져 보는 묘사가 되기 십상이다.

땅덩어리가 한반도의 1백배가 넘고 인종도 러시아, 라트비아, 우즈베크 등등 해서 1백여종에 이르니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푸슈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파스테르나크, 솔제니친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위대한 문필가들. 차이코프스키, 림스키, 스트라빈스키 등으로 대표되는 음악가들.

이 뛰어난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 담겨있는 러시아적인 분위기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어떤 보편성을 갖고 있다. 드넓은 대지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사람들의 영혼을 담고 있는 것도 같다. 이처럼 심오한 ‘정신세계’가 꽃핀 곳에서 어찌 ‘유물론’이 발을 붙일 수 있었는지 의아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 러시아가 지금 변하고 있다.

이 변화는 아마도 세계사의 한 폭에 큰 획을 가를 탈바꿈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문자 그대로 ‘철의 장막’처럼 닫혀져 있던 소련의 개방이 실감나게 느껴졌던 처음의 ‘사건’은 1989년 봄 태극날개를 단 대한항공편이 시베리아 하늘을 통과하고 모스크바에 취항까지 한 일이었다. 그것은 총포의 폭음을 비행기의 굉음으로 덮은 것이었다.

모스크바 거쳐가

불과 10시간만에 성큼 다가서는 모스크바에서 또 1시간 후면 러시아 제 2의 대도시 레닌그라드에 도착할 수 있다. 18세기 초 피터대제가 이 도시를 건설했을 때 붙인 이름은 자신의 이름을 딴 ‘페테스부르크’였다.

20세기 초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독일식 이름이라 하여 ‘페트로그라드’로 바뀌었다가 레닌의 혁명이 성공하고 그가 죽은 직후 이 도시는 다시 ‘레닌그라드’가 되었다.

결국 이 도시 이름의 변천은 러시아의 역사를 담고 있다.

예술과 문화, 그리고 ‘러시아의 머리’에 해당되는 레닌그라드.

황제를 일컫는 ‘차르’의 겨울 궁전이었던 ‘허미티지(에르미타주)’는 루브르 및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다. ‘차르’의 권력을 과시하던 이 궁전은 1905년 ‘피의 일요일’을 맞이한 황제의 일족들이 처참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던 곳.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의 작품도 몇 점 소장되어 있고, 루벤스, 세잔, 고갱, 고흐, 르누와르, 피카소 등의 작품은 각각 방 하나씩을 차지하며 전시되어 있다.

각각의 전시실에 지극히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할머니 관리인들이 시선을 끌기도 하는데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작품에 손을 대는 무례한 짓을 하면 알아들을 수 없는 러시안 말로 야단을 친다.

러시아 여행길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할머니 관리인은 노인에게 제공되는 최적의 일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레스토랑이나 미술관 같은 곳에서도 코트를 보관해주는 간단한 일자리에는 어김없이 할머니 또는 드물게는 할아버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허미티지를 나와 네바강을 따라 5분쯤 가다보면 ‘피터 폴 요새’를 만나게 된다.

이곳은 발트해로 진출하려는 피터대제의 요새였으나, 제정 러시아 말기에 일부 건물은 정치범들을 가두어 놓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2차 대전 탄흔도

요새 안은 화폐를 만들던 조폐창이 있는가 하면 성당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도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 2차 세계대전 중의 탄흔도 남아 있다.

당시 레닌그라드는 나치에 의해 약 9백일동안이나 포위되어 3백만 인구 중 거의 1백만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지도자들까지도 포기하고 있었던 레닌그라드의 외로운 투쟁은 마침내 침입을 막아내 감동적인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만들고 막을 내렸다. ‘영웅의 도시’라고 씌여진 글귀가 지금도 이 도시의 중심도로인 네프스키街에서 여행객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허미티지나 피터 폴 요새가 제정시대의 유적이라면 레닌스퀘어나 스몬리 수도원 부근은 볼셰비키 혁명이 잉태됐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스위스에 망명 중이던 레닌이 ‘차르’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열차로 도착한 핀란드 역, 레닌 동상, 카를 마르크스와 엥겔스 기념비, 스몬리 수도원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우리에게는 감회가 깊다고 할까, 한이 서려있음직한 공산체제의 자궁과도 같은 광장앞에서 필자는 꽤나 감동적인 경험을 했다.

햇빛 구경도 며칠째 못한 음산한 날씨가 이곳 분위기에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나팔과 북 같은 악기를 든 소련 젊은이 대여섯명이 서툰 영어로 ‘어데서 왔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코리아’라고 하자 ‘남쪽이냐’ 되물어 ‘그렇다’고 하면서 여기저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애국가가 연주되었다.

러시아 땅, 그 중에서도 그 사상이 행동으로 옮겨졌던 심장부에서 듣는 애국가 리듬은 듣는 이를 멍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스케치를 하고 있던 우리 일행 신동우 화백께서 손뼉을 치면서 1달러 지폐를 그들에게 건넸다.

소련 땅에서의 변화는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러일 전쟁 때 활약하던 군함 오로라號를 구경하려고 몰려드는 일본 관광객 앞에서도 또 다른 젊은이 밴드는 일본 군가를 연주해 주고 돈을 받기도 한다.

몇몇 호텔에서는 로비에까지 거의 공식적으로 잠입한 늘씬한 러시아 미녀들이 ‘방번호’, ‘백불’, ‘5분후에 올라갈게’ 등을 짧은 영어로 흥정을 해대는 풍경을 지켜볼 수도 있다.

야간열차에서 만난 여인

레닌그라드를 오후11시에 출발해 모스크바로 향하는 8시간 동안의 야간 열차.

단 둘이서만 누울 수 있는 침대칸 속에서 오전 3시까지 필자의 잠을 설레게 했던 21세의 유부녀 나타샤와의 대화내용이 오늘의 러시아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말해 주는 것 같다.

” 경제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입고 있는 청바지를 사는데 39달러를 줬다. 그렇지만 루블로는 구할 수 없다. 공식적으로는 담배도 한달에 다섯 갑 밖에는 살 수 없다. 남편이 운동선수라 비교적 잘사는 편이고 외국에도 두어번 나가봤다. 40루블 정도면 전화, 가스, 중앙난방, 아파트 임대료 등 실생활에 필요한 것은 해결되지만 소비재가 미흡하다.

(필자와 뽀뽀는 좋지만) 키스는 안된다. (화장실에 가서 잠옷으로 갈아입고 와서 모로 누우며) ‘굿 나잇”.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백 준 | 중앙일보 ‘세계를 간다’ 1990. 11. 18. 7면 | 필자 필명 게재분]

태그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