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6] 인도를 잘 아세요?

[인도-6] 인도를 잘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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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설이 있어 근거가 명확하진 않지만,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후인 허황옥이 인도 출신이라는 설화가 있다. 백제에선 침류왕 때 인도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중국의 동진을 거쳐 백제에 와서 불교를 전했다. 백제 승려 겸익(謙益)은 522년 우리 불교사상 최초로 불교 문화의 원류를 찾아 직접 인도를 다녀왔는데(526년), 신라 승려 혜초보다 200년 가량 앞선 것이다.

우리나라와 인도에는 어떤 스토리가 있을까?

신라 승려 혜초(彗超 704-787)는 723년 스무살 나이에 당시 천축국으로 알려진 인도여행을 나섰다.
길고 먼 험난한 여행 길….. 중국의 광주를 떠난 혜초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자바섬 앞바다를 경유하여 북인도의 구시나가라, 바라나시 등을 거쳐 파키스탄, 이란 등을 경유, 4년에 달하는 긴 여정을 거쳐 중국의 장안으로 돌아왔다.

성덕왕 26년(727)에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라는 세계적 여행기를 남긴다. 여행기는 1908년 중국 둔황(敦煌) 석굴에서 프랑스 학자 P.펠리오에게 발견돼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되었다.

1911년 영국왕 조지 5세가 델리 방문을 위해 바닷길을 통해 뭄바이 항구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여, 1924년 세워진 Gateway of India. 델리의 인디아 게이트와는 다르다.

1919년 조선의 3.1운동이 인도 독립운동에 도화선이 됐다는 주장은 두 나라에서 있었던 여러 사실(史實)을 살펴보면 과장이다. 우리 국사교과서, 국가기록원에 기록되어 있는 ‘독립운동 판결문 3.1만세운동의 의의’, 심지어 대통령 연설문까지, “인도의 독립운동이 한국의 3.1운동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식으로 언급되고 있다.
인용이나 자료참고 등으로 재탕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인도의 각종 시민운동 역사 연대기만 살펴봐도 팩트의 왜곡이란 걸 쉽게 알 수 있다.

1953년 6.25 한국전쟁의 휴전이 추진되면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용단으로 소위 ‘반공 포로’가 석방되었다. 이들 중 88명이 1954년 2월 인도에 도착했다.
그러나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80명이 재출국(70명은 중남미로, 10명은 북한, 중국으로…)하였다고 한다. 남은 분 8명도 나중에는 4명으로 줄며 인도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 사회의 1세대를 형성하였다.
1962년에는 뉴델리 총영사관이 개설되었고, 1973년 12월에 대사관으로 승격돼 오늘에 이른다.

‘인도에는 인도가 없다’?

질주하는 릭사의 소음, 극심한 대기오염, 불안한 치안 등을 보며 절레절레 머리를 흔드는 여행객들. ‘인도(印度)에는 인도(人道)가 없다’는 책까지 출판돼 있지만 우리는 인도를 제대로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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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면적은 328만㎢으로 남한의 33배 정도다. 13억명이 넘는 인도의 인구 중에서, 힌두교가 82%, 이슬람교가 11%, 기독교가 4% 정도라 한다. “그 어떤 종교가 들어오든 간에 힌두교의 영향으로 인도식으로 현지화되어 버리기 때문에, 세계에서 선교하기 가장 어려운 국가”라는 말이 있는 게 인도다. 섣불리 아는 체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부분 “필자처럼” 여행지 몇 군데만 훑어보고 아는 체하는 용감성(?)을 드러낸다.
인도 여행에 관한 수많은 기행문이 발표되는 이유가 그 까닭일 듯하다. 넓다. 다양하다. 특이한 게 많다. 그러다 보니 저마다 본 것을 써놓아도 조금은 새롭기 때문일 것이다.

선입견 내지는 첫 인상과 달리, 오늘날의 인도는 의회 구성 등에서 주목할 만한 민주주의 국가, 종교적 또는 정신적 차원에서의 수행과 명의, 제작편수와 관람인원 규모에서 세계 최대 영화 나라, 영국 식민지를 거치며 축적된 저변의 영어 능력,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국적 기업들이 세운 콜센터 등의 영향으로 발전한 IT산업 등에서 새롭게 눈 여겨 볼 만한 나라임에 틀림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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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on “[인도-6] 인도를 잘 아세요?
  1. 추완식 댓글:

    잘 읽었습니다. 여행은 지식을 줍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