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3] 이슬람 세력의 인도 진입

[인도-3] 이슬람 세력의 인도 진입
꾸뜹 미나르에서 수학여행 학생들의 환영을 받는 필자. 인솔교사도 함촬영을 희망했을 정도로 한국인 인기가 좋았다.

인도 최초의 본격적인 통일제국이랄 수 있는 마우리아가 기원전 2세기경 멸망하면서 인도는 다시 분열됐다.
이란 계통의 쿠샨왕조(105년경 ~250년경)가 서북 인도로 침입하여, 마우리아 왕조 멸망 이후 분열되어 있던 인도를 다시 통일하였다.

이 당시 중생의 구제를 앞세운 대승불교 성했는데, 그리스 문화와 불교 문화가 융합하여 만들어진 간다라 미술과 함께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위진남북조시대), 우리나라, 일본 등 동아시아 전반으로 전파되었다.

쿠샨 왕조를 거쳐 북인도에는 4세기쯤에 다시 통일국가의 면모를 갖춘 굽타왕조(320–550)가 들어섰다. 아울러 불교가 쇠퇴하고 브라만교를 기반으로 힌두교가 발전하였다. 그리스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브라흐마-비슈누-시바의 3신 신앙이 이때 본격화되었으며, 왕은 힌두교의 화신(라자)으로서 권위를 누렸다.


중국 동진(東晉)시대의 법현(Fa Hien)스님이 저술한 불국기에는 이 당시의 인도는 복지 시설이나 치안 유지 등이 잘 되어있었다는 기록을 남겨놓고 있다. 이 스님이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에 도착했을 때는 60살 무렵이었다고 한다. ‘하늘에는 새도 없고, 땅에는 짐승이 없으며, 오직 앞서간 이들의 뼈와 해골이 이정표가 된 길’을 노구를 이끌고 갔던 법현은 그곳에서 15년 동안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고 경전을 익히며 인도뿐 아니라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등까지 순례했다고 한다.

또한 이 시대에는 천문학이나 수학도 數學, mathematics)도 발전하였다. 힌두교의 등장으로 불교는 위축되었으나 학문이나 예술적 발전은 계속되어, 0의 개념과 십진법을 기반으로 한 아라비아 숫자를 처음으로 만든 것도 이들이다.

그러다가 5~6세기에 거쳐, 굽타 왕조는 흉노족 계통의 유목민족 에프탈에 의해 쇠퇴하고 여러 나라로 분열되었다. 여기까지가 인도 고대사의 끝으로 분류된다.

노예왕조의 승전기념탑 꾸뜹 미나르

그 후 인도에는 이슬람세력이 진입한다. 7세기에 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창시된 이슬람교 세력이 8세기쯤엔 지중해 및 중국 진출을 모색하며 해상무역에 나서면서 바다를 누비던 인도와 자주 마찰을 빚다가, 10세기 말부터 인도는 본격적으로 이슬람화되었다.
이슬람 왕국이 본격 등장하는 시기까지는 인도의 고전시대(인도 중왕국, BC 200년대 ~ 1279)로 분류된다.

꾸뜹 미나르 옆의 모스크 정원 쪽 전경과 철기둥

13세기 초 델리 지방을 중심으로 인도 최초의 이슬람왕조(델리 술탄왕조)가 세워졌는데, 흔히 ‘노예왕조’라고 불리운다. 노예 출신 아이바크(Qutub Uddin Aibak; 1150~1210)가 상인의 집에서 양육되다가 팔리고 팔려서 고르왕조 무함마드왕 밑에서 세력을 키워 독자적 이슬람 왕국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그 후 약 3세기 동안 인도에서는 많은 이슬람왕조가 흥망을 거듭하였다. “알라 앞에서 모두 평등하다”는 이슬람 교리가 카스트제도의 신분차별에 신음하던 하층민들에게 어떻게 작용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이 시기에 불교 유적도 대부분 파괴되었다.

술탄 아이바크가 힌두세력과 싸워 이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192년 축조한 것이 델리의 꾸뜹 미나르’다. 이슬람의 인도 지배 상징물이다. 5층 탑이지만 높이가 72.5미터로, 아파트 25층 높이의 거대한 탑에 조각된 힌두 양식과 이슬람 양식 문양의 코란으로 유명하다.

꾸뜹 미나르에서 수학여행 학생들의 환영을 받는 필자. 인솔교사도 함촬영을 희망했을 정도로 한국인 인기가 좋았다.

미나르 옆의 크와투르(Quwwatul Islam Mosque)는 인도 최초의 이슬람 모스크로 정원, 수도원, 기도예배당으로 이루어졌다.
이 정원에 세워진 높이 7m의 철기둥은 굽타 왕조(375~413년) 때 만든 것이다. 철 함량이 99.72%라는데 녹슬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설이 있을 뿐 과학적으로 명쾌한 해명이 안된다고 한다.
델리에서 가장 큰 비슈누 사원에 있던 신기한 기둥을 옮겨 왔다는데, 이러한 신비로움에 덧입혀진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기둥에 등을 대고 양 팔을 뒤로 젖혀 손가락 끝이 서로 깍지 끼워지면 행운이 찾아 온다는 것. 그러나 요즘은 철기둥 주변에 울타리가 있어 접근이 안된다.

그후 무굴 제국의 성립까지 약 3세기 동안 인도에서는 많은 이슬람 왕조가 흥망을 거듭하였다. 이 시기에 불교 유적도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알라 앞에서 모두 평등하다”는 이슬람 교리가 카스트제도의 신분차별에 신음하던 하층민들에게 어떻게 작용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이 인도이야기는 잡지 “큰그릇”(2019년 4~6월호)에 필자 실명(김백순)으로 게재한 ‘스토리가 있는 여행’ 기사와 일부 내용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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