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4] 무굴제국 황제들과 타지마할

[인도-4] 무굴제국 황제들과 타지마할

북인도 델리와 아그라를 점령하면서 들어선 또 다른 이슬람왕조 ‘무굴제국(Mughal Empire)’을 세운이는 바부르(Bābur, 재위 1526~1531)이다. ‘무굴’은 곧 ‘몽골’을 의미한다. 바부르가 중앙아시아에서 서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몽골 혈통 티무르(Tīmūr – 1336~1405)의 5대손 인 것이다.

우리 조선시대에 인도엔 무굴제국이 있었다

무굴 제국은 1556년 즉위한 3대황제 악바르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인도 북부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2대황제 후마윤(Humayun; 1508~1556)은, 궁전도서관 계단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남편 잃은 황후의 요청에 따라, 1562년에 짓기 시작해 1570년에 완성된 후마윤의 묘는 인도 최초의 정원식 무덤이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타지마할과 비슷하지만, 하얀 대리석으로 지은 타지마할 보다 80여년 앞서 붉은 사암으로 지은 것이다.

대부분의 인도 관광지 외국인 입장료는 자국민 보다 훨씬 비싸다. 볼거리가 많은 무굴제국 시대의 유적이 특히 그러하다. 예를 들면 타지마할의 경우 인도인들 입장료는 250루피인데, 외국인은 1300루피(약 2만2000원)나 된다.

아내에 대한 사랑 또는 집착?- 타지마할

타지마할을 손끝으로 들다

무굴제국 5대황제 샤 자한(Shah Jahan; 재위 1592~1666) 당시 국력은 3대황제 악바르 이래 거의 절정기였다.
그의 문화적 취향과 종교적 관용성으로 시민들도 평온했다. 적어도 그의 황후 뭄타즈 마할(Mumtax Mahal; 1593~1631)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14세에 황후가 되어 19년 동안 14명의 자녀를 낳은 뒤 다시 임신 중인 38세에 사망한 부인.
터럭만큼도 험 잡을 데가 없다고 생각하던 아내의 죽음에 비통해 하던 황제는, 22년에 걸쳐 궁전 형식의 무덤으로 시공을 초월한 사랑의 상징을 축조했다.
페르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전문기술자들이 왔다. 미얀마, 중국, 오스만제국, 이집트에서까지 건축자재를 수입했다고 한다.

19년 동안 14명의 자녀를 낳고 죽은 황후에 대한 사랑의 상징인가? 건축예술의 걸작 타지마할.

건물 전체가 흰 대리석인 타지마할의 꼭대기 높이 약 65m에 달하는 중앙 돔 사방을 호위하는 듯한 50m 정도의 첨탑 등,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완벽한 대칭을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건물 밖의 정원, 연못 등의 배치 또한 완벽한 대칭이다.
눈부신 순백의 외관은 날씨나 햇빛 방향에 따라 수시로 분홍색 은백색 등 빛깔이 달라져 감탄을 자아낸다. 건물 내부에 새겨진 꽃 모양의 조각들과 거기에 박힌 갖가지 보석들도 빛의 각도에 따라 색감이 다르다.
때문에 타지마할 관광에서 빠트리지 말도록 전해지는 것이, 석양에 비친 외관과 안내자가 프래쉬로 비쳐주는 건물 내부의 조각 등이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는 평가까지 받았지만, 당시 계속되는 건축공사에 백성도 신하들도 저항이 심했다. 타지마할 외에도 아그라성(Agra Fort), 델리의 레드포트(Red Fort), 자마마스지드(Jama Masjid) 등 유난스러울 만큼  건축에 대한 집착이 재정난의 원인이 된 것이다.
결국 1658년 셋째 왕자 아우랑제브(Auranzeb; 1618~1707)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타지마할에서 2km 정도 떨어진 아그라성(Agra Fort)의 탑에 유폐돼 말년을 보내야 했다.
갇힌 성탑 창문 너머 보이는 타지마할에 있는 아내를 그리다가 1666년에 사망했다. 6대 황제에 올라있던 불효자식은 그나마 아버지의 유해를 어머니 옆에 안장하였다.

[이 인도이야기는 잡지 “큰그릇”(2019년 4~6월호)에 필자 실명(김백순)으로 게재한 ‘스토리가 있는 여행’ 기사와 일부 내용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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