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2] 석가모니와 인도의 불교

[인도-2] 석가모니와 인도의 불교

기원전 8~6세기경 북인도 지역은 소위 ’16국 시대’로 나뉘어졌다가 점차 병합되었다.
갠지스 강 중류 마가다 왕국의 난다 왕조가 기원전 5세기경 부분적으로 인도 통일을 이루었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붕괴하였다.

이무렵 브라만교의 지나친 의식 중시에 반발하여 자비와 평등을 역설한 불교가 싹텄다. 중국에서 공자님이 활동하던 것과 비슷한 시기다. 살생이나 고행 금지 등의 계율을 강화한 자이나교도 발생하였다. 불교와 자이나교, 힌두교는 모두 당시의 윤회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석가모니(釋迦牟尼;  ‘샤카’족의 ‘성자’라는 뜻; Gautama Siddhārtha)는 북인도의 가비라(迦毘羅; Kapila, 지금의 네팔 지방) 왕국에서 태어나셨는데, 기원전 563년 또는 480년, 사망은 기원전 483년 또는 400년 등 여러 설이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방불교 전통을 받아들여 생몰년을 기원전 624~544년으로 본다. 이에 따라 통용되는 ‘불기(佛紀)’는, 입적하신 해를 원년(1년)으로 삼아 연도를 헤아린다. 즉, 서기 2019년은 불기 2563년이 되는 셈이다.

생노병사의 ‘고(苦)’를 넘어서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을 마다 않던 싯다르타는, “육체를 괴롭히는 것이 오히려 육체에 더욱 집착하게 한다”며, 고행을 중단하고 한 소녀가 건네준 유미죽 공양을 받아 기운을 차렸다고 한다.
함께 고행했던 다섯 수행자는 이 모습을 보고 싯다르타를 비난하며 그 곁을 떠났다던가? 그러나 싯다르타는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깊은 명상에 들어, 마침내 깨달음을 얻는다. ‘부처님’이 되신 것이다.

부처님의 첫 설법지- 사르나트(Sarnāth; 鹿野苑)

부다가야에서 250km, 바라나시 북쪽 10km 남짓 거리의 사르나트(Sarnāth; 鹿野苑))는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후 자신과 함께 고행했던 다섯 수행자들을 찾아와 처음으로 설법한 곳(初轉法輪地)이다.

불가 4대성지의 하나로, 불탑과 사원 유적들과 ‘다메크탑(dharma chakra stupa)’을 만나 볼 수 있다. 5비구에게 처음 설법한 기념으로 훗날 아소카 왕(기원전 3세기 중엽)이 세운 탑이다.
또한 여기 출토품 대부분 성지 바로 옆의 고고학박물관에 수장되어 있어 편히 관람할 수 있다. 특히 초전법륜상(初轉法輪像)이 유명하다. 회백색 사암에 새겨진 오묘한 표정의 굽타시대 불상으로, 인도 조각예술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입구에 놓인 아쇼카 왕 석주 머리 부분의 사자 장식도 이 박물관의 명물이다.

아소카왕의 고뇌와 불교의 확산

석가모니의 80평생 ‘깨달음’의 여정은 어떠했을까?
탄생지 룸비니(오늘날의 네팔지역)-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부다가야- 최초 설법지 사르나트- 입적하신 쿠시나가라 등, 붓다가 걸은 4대성지 곳곳에서 뜻밖에 전쟁을 일삼았던 정복자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마우리아제국(Maurya Empire; 기원전 321~185년) 3대왕 아소카가 붓다를 기리며 세운 큰 탑이나 돌기둥(石柱) 등의 유적이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Alexandros the Great, BC 356~323) 원정단이 철수한 틈을 타 마가다족 찬드라굽타(Chandragupta Maurya, BC 349?~298?)는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을 세웠다. 이 마우리아제국은 남단 타밀지역을 제외한 인도 전역에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권력을 행사, 많은 공공도로도 건설했다.
찬드라굽타의 손자인 제3대 아소카 왕(Ashoka the Great; 기원전 273~232년)은 곳곳에 우물과 여행자를 위한 휴게소 및 국영 창고도 설치하였으며, 운하를 파고 저수지도 만들었다.

아소카왕의 고뇌- “다른 이들의 번영을 빼앗는 것이 승리인가?”

아소카 재위 당시 마우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였다. 재위 8년째, 그때까지도 뻣뻣하게 엎리지 않은 칼링가를 초토화시킨 전투가 계기였다던가? 전쟁과 살육에 회의를 느낀 아소카는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의 고뇌는 대략 이러했다고 전해진다. “…무고한 아녀자와 아이들, 그 남편이나 자식이나 아비를 빼앗는 것이 과연 용맹인가? 제국의 번성을 명분으로 다른 이들의 생명과 번영을 빼앗는 것이 과연 승리인가?…”

역사학자 윌 듀란트에 따르면, 아소카는 불교 포교사들을 실론(현재의 스리랑카), 시리아, 이집트, 그리스까지 보냈다. 또한 최초로 고아원, 양로원, 정신병원 등을 만들고 물이 부족한 마을에 우물을 파는 등 복지 인프라를 확충했다고 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광개토대왕+세종대왕 비슷한 이미지를 형성한 배경이다.

아소카왕의 불교 귀의는, 북인도지역에 머물던 불교가 세를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인도의 불교신자는 어떡하다 전 국민의 1%도 안 되는 것일까?

[이 인도이야기는 잡지 “큰그릇”(2019년 4~6월호)에 필자 실명(김백순)으로 게재한 ‘스토리가 있는 여행’ 기사와 일부 내용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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