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 고엔카와 위빠사나 명상

위빠사나 지도자로 명성을 쌓은 고엔카(S.N. Goenka; 1924.01.30~2013.09.29)는 미얀마의 부유한 인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한때 성공한 사업가로 성장하였으나, 1955년부터 심한 두통을 겪으며 의학적인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친구의 권유로 위빠사나 지도자 사야지 우바킨 밑에서 명상을 지도 받았다.
1969년 인도로 이주하여 명상지도자로 활동했다. 붓다가 해탈에 이르는 과정 내지 방법에 대해 종교 차원을 넘어선 보편적 과학적인 특성을 강조했다.
세계 여러 곳에 명상센터를 설립하였으며, 특히 인도 뭄바이 근교에 글로벌 위빠사나 파고다를 2008년에 완성했다.

1997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Doing Time, Doing Vipassana’는 1993년 뉴델리 티 하르감옥에서 당시 교도소장인 키란 베디(KiranBedi)의 지원을 받아, S. N. 고엔카에 의해 10일 간의 위빳사나 명상 코스가 열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베디는 교도소 경비원들을 먼저 위빳사나 코스에 참가하도록 한 후, 고엔카로 하여금 천 여명의 수감자에게 명상을 가르칠 수 있도록 지원했다.
2007년에 개봉된 ‘The Dhamma Brothers’는 미국 앨라바마의 베세머에 위치한 도날슨 재활 감옥에서 열린 위빠사나 명상 코스에 관한 영화이다.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4명의 수감자, 경비원, 교도관 및 지역 주민들의 인터뷰 내용과 수감자들이 범죄를 재연하는 장면도 포함되어 있다. (이상 위키백과 참조)

고엔카는 “위빠사나 수행은 자기자신의 실재(reality)를 직접 경험하는 자기관찰 방법”이라고 정의한다.
‘passanā’는 보통 뜬눈으로 보고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vipassanā’는 사물을 단지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본성으로서의) 있는 그대로(yathābhūta)를 관찰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고엔카는 “삶의 예술(Art Of Living): 위빠사나 명상”이라는 저서, 여러 인터뷰나 강의 등을 통해 위빠사나 수행이 무엇이며, 수행의 과정과 결과,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쉽게 짧게 설명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수집한 주요 내용을 어록 형식으로 발췌 요약해 본다.

“… 만약 저의 스승님(사야지 우바킨)께서 저에게 종교적인 예배나 의식을 수행하도록 요구했다면, 저는 그의 명상 센터를 떠났을 것입니다. 제가 속해 있는 힌두교의 전통은 이런 저런 의식과 제식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다른 종교적인 의식들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면 그것은 저에게 전혀 의미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승님은 말씀하시기를 ‘여기에 종교적인 예배나 의식은 없습니다. 붓다는 sīla (계율), samādhi (선정) paññā (지혜)를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아무 것도 더할 것도 없고 빼낼 것도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붓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Kevalaparipuṇṇaṃ'(빨리어: 이 명상법의 전체가 이 자체로서 완전하다)”

“모든 존재가 참된 평화, 참된 조화, 참된 행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관습상으로 분명한 진리는 정신적 육체적 전 구조의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할 때까지 통찰되어야 한다. 이러한 진리를 경험할 때, 맹목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멈출 수 있고,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멈출 수 있으며, 자연히 묵은 번뇌들이 점점 소멸되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경험한다.”

“우리는 모두 혼란과 짜증, 부조화를 종종 경험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 혼란으로 괴로울 때 우리는 이 고통을 스스로에게만 한정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도 괴롭게 만든다. 불행은 비참한 사람의 주변 환경에 스며들어, 그러한 사람과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잘 사는 법이 아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모든 소원이 항상 이루어지고, 원치 않는 것은 하나도 생기지 않는 그런 삶을 살 수는 없다. ….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 여러분이 화, 두려움, 어떤 부정성을 일으킨다면 가급적 빨리 다른 것으로 주의를 돌려야 한다. 예를 들어,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신다면 분노는 더 이상 커지지 않고 진정될 것이다. 아니면 하나, 둘, 셋, 숫자 혹은 한 단어나 구절 아니면 어떤 주문이나 여러분이 믿는 신을 반복해서 부를 수도 있다. 기분이 전환되고 어느 정도는 부정성과 화에서 벗어난다. 마음의 동요 상태에서 자유로워진 것처럼 느끼게 되지만, 주의를 돌려 부정성을 무의식의 수준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무의식 속에서 똑같은 불순물을 계속 만들고 증가시킨다. 표면에는 평화와 조화의 층이 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는 언젠가 격렬하게 폭발할 수 있는 억눌린 부정성의 화산이 잠자고 있다….”

“…..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은 문제로부터 도망가는 것일 뿐… 회피는 해결 방법이 아니다. 문제에 맞서야 한다. 부정성이 마음속에서 일어날 때마다 그 부정성을 그저 관찰하고. 부정성에 직면하라. 마음의 불순물을 관찰하자마자, 그것은 힘을 잃고 천천히 시들어갈 것이다….. 좋은 방법은 양극단 즉 억제와 표출, 둘 다를 피하는 것이다. 부정성을 무의식 속에 묻어둔다고 없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불건전한 행동이나 말로 표현하도록 내버려둔다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뿐이다. 그러나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번뇌는 사라지고, 여러분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자신이 가진 불순물과 직면하는 일은 쉽지 않다. 화가 날 때, 우리는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 화에 압도되어, 다른 사람과 자신에게 해가 되는 행동이나 말을 한다. 화가 가라앉고 나서야 뉘우친다. 그러나 다음에 비슷한 경우가 생기면, 우리는 다시 똑같이 반응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후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려움은 부정성이 시작되는 때를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데 있다. 그것은 마음 깊은 곳, 무의식에서 시작되는데 의식으로 올라올 때쯤에는 너무나 강렬해져서 우리를 압도해 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관찰할 수가 없다.”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한 분이 진정한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 마음 속에서 번뇌가 일어날 때마다 동시에 신체적으로 두 가지가 함께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나는 호흡이 정상 리듬을 잃는다는 것이다. 마음 속에 부정성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의 호흡은 거칠어진다. 이것은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좀 더 미세한 수준에서는, 생화학적인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몸에 어떤 감각이 일어난다. 모든 번뇌는 몸 속에서 이런 저런 감각들을 발생시킬 것이다. 이것은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평범한 사람은 마음 속의 추상적인 번뇌, 즉 추상적인 공포, 화, 열정 등을 관찰할 수가 없다. 그러나 올바른 훈련과 연습으로 호흡의 움직임과 신체의 감각을 관찰하는 것은 매우 쉽다. 이 두 가지는 정신적 번뇌와 직결되어 있다.”

“이 심신의 현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한 면은 마음 속에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들이며, 다른 면은 몸에 일어나는 호흡과 감각이다. 어떤 생각이나 감정, 어떤 정신적 번뇌도 그 순간의 호흡과 감각에 바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호흡과 감각들을 관찰함으로써 사실상 정신적 번뇌를 관찰하게 된다. 문제로부터 도망가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직면하는 것이다…..계속 이렇게 한다면 번뇌는 자연스럽게 모두 사라지고, 부정성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자기 관찰은 이런 방법으로, 내부와 외부의 양면에서 실상을 보여준다. 전에는 항상 외부만 관찰할 뿐 내면의 진실을 놓쳤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를 밖에서만 찾았으며, 항상 외부의 실상을 탓하고 변화시키려 했다. 내면의 실상을 몰랐기 때문에 고통의 원인이 우리 내부에 즉, 유쾌하고 불쾌한 감각들에 대한 맹목적인 반응에 있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훈련을 통해 우리는 동전의 다른 면도 볼 수 있다. 우리는 호흡을 알아차릴 수 있고, 또한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호흡이든 감각이든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고, 단지 바라보는 법을 배우면, 반응을 멈추고, 불행이 커지는 것을 멈추게 된다. 대신 번뇌가 드러나고 사라지도록 내버려 둔다.
이 방법을 연습하면 할수록 부정성은 더 빨리 사라질 것이다. 마음은 번뇌로부터 점차 벗어나 순수해질 것이며, 순수한 마음은 항상 이타적인 사랑으로 가득하고, 실패와 고통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 타인의 성공과 행복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하며, 어떤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평정이 가득할 것이다.”

“마음을 ‘호흡’이라는 하나의 대상에 계속해서 고정시키는 훈련….. 숨이 들어가고 나는 것에 가능한 오랫동안 주의를 집중…..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대로 자연스런 숨을 있는 그대로 관찰…. 마음은 더욱 더 차분해져서….. 마음을 집중하고, 마음을 날카롭고 꿰뚫을 수 있게 만들어, 통찰할 수 있다.”

“균형잡힌 마음은 평화로울 뿐 아니라, 주위 분위기에도 평화와 조화가 스며들어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다른 이들을 돕게 된다. 내면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에 평정을 유지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외부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객관성을 개발하게 된다.”

“‘객관성’은 세상의 문제에 대한 도피나 무관심이 아니다….. 내면의 실상을 바라봄으로써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지혜가 일어날 때, 맹목적으로 반응하기를 멈출 때, 진리를 알고 이해하는 균형잡힌 마음에서 일어난 진정한 행동이 가능하다. 그러한 행동만이 나와 남에게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며 도움이 된다.”

“…. ‘너 자신을 알라’ㅡ 생각과 이론의 영역에서 지적으로만 아는 게 아니라, 마음-몸 현상의 실상을 직접 경험하는 것만이 우리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줄 것이다.
자신 내면의 실상을 직접 경험하는 것, 자기 관찰의 방법이 ‘위빠사나’다….. 단지 사물이 보이는대로가 아니라 사물을 실제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진리를 완전히 꿰뚫고 들어가 정신-육체 구조 전체의 궁극적 실상에 도달해야 한다. 이 진리를 경험할 때 우리는 맹목적인 반응과 부정성의 생성을 멈추는 법을 알게 될 것이며, 불행에서 벗어나 참된 행복을 경험할 것이다.”

“자신의 내면의 통찰력을 계발하여, 번뇌로 가득한 마음을 정화시켜야…. 이것이 위빠사나…. 자신의 내면의 실상을 경험하는 것. 항상 변화하는 심신의 현상이 몸의 감각으로 드러나는 것을 체계적으로 냉정히 바라봄…. 스스로를 관찰하여 스스로를 정화…. 내면의 진리를 관찰함으로써 실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 거칠고, 외부적이고, 겉으로 보이는 진실로부터 시작해서 마음과 몸의 궁극적인 진리로 꿰뚫어….. 마음과 몸을 뛰어넘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상대성으로 조건지워진 것을 뛰어넘는 궁극적인 진리를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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