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

우거진 숲과 사랑을 찾는 시속 2백킬로의 질주
과학기술의 발달은 자연을 거슬른다. 지구 땅덩어리는 아무런 변화도 없지만 교통수단이 첨단화되어 가다 보니 겨울여행이 목적지에 가서는 여름이 되기도 하고 한여름에 떠나서 눈덮인 알프스를 구경하게도 된다.

그러나 이런 시간거슬르기 여행은 돌아와서 애깃거리는 풍부해지지만 옷가지 준비로 짐 꾸리기도 불편하고 인체의 리듬을 깨버린다. 역시 가을엔 가을을 느껴야 하고 여름에 달구어진 몸과 마음을 식히면서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관조해볼 필요가 있다.

처녀들에게 인기 있는 숲속 생활
바로 이 낭만과 사색의 여행에 적당한 곳이 독일이다.
괴테, 쉴러, 하이네, 니이체, 칸트…..세계문화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독일이라는 나라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들의 위대한 작품과 심오한 철학이 탄생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열다섯시간. 1989년부터 소련 영공을 통과하여 논스톱으로 날아 가니 반나절쯤 빨리 도착하는 셈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이는 독일 땅은 푸르름을 넘어서 검은 느낌을 가져다 준다. 나무들이 많은 것이다.
나무를 가꾸는데 열심이기 때문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가히 어떤 신념과도 같은 열성으로 독일인들은 숲을 보존하고 나무를 돌본다고 해야 옳을 것같다.

분단 당시의 서독 수상도 지낸 아데나워가 2차대전 직후 쾰른 시장이었을 때의 일화 한토막.
이 지역을 점령했던 영국군 사령관이 시민들의 난방 연료로 인근의 나무를 베어 쓰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아데나워 시장은 사직서를 제출하며, “영국인은 나무를 함부로 베는 모양이지만 독일인은 그럴 수 없다. 루르지방까지 가면 탄광이 많은데 점령군 사령관이 수송을 맡으면 된다”고 거부했다고 한다. 후임자들도 마찬가지.
어쩔 수 없이 시민들의 땔감을 위하여 군용트럭이 동원됐다는 것이다.

대학에서의 임산학 전공자들의 기본 수학년한도 다른 과목보다 긴 16학기나 되고 처녀들의 신랑감 직업으로도 무척 인기가 높은 것이 삼림보호관이라고 한다.
사회적인 평판이 높은데다가 숲속에서의 생활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엄격한 규율 속에서의 스트레스 분출
독일 처녀들은 식생활 탓인지 어릴 때는 무척 귀엽고 예쁘다가도 스무살이 넘으면 대체로 뚱뚱해지기 시작한다. 날씬한 아줌마는 게르만족이 아닌 것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이를 빗대서 현지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아마도 독일인들이 실용성을 추구하다 보니 몸매도 실용적이 되는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여행이 남자들에게 삭막할 것은 없다.
유럽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상당히 프리섹스 풍조에 젖어 있고 몇몇 사우나탕에는 남녀가 함께 목욕하는 곳도 있어 색다른 경험을 해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저기 힐끔거리는 것은 참으로 촌스럽고 망신살 뻗치는 노릇이 된다. 그런 사우나탕은 화란이나 일본 등 세계 여러 곳에 있으며 하나의 자연스러운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

독일에서의 프리섹스 풍조도 꽉 짜여진 규율과 질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된 일종의 숨통과 같은 역할을하는 것 같다. 아우토반이라고 불리우는 고속도로에서 최고제한속도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풀이가 있다.

1885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자동차를 제작한 벤츠의 나라답게 유럽에서 가장 빠른 고속도로망을 자랑하는 그들은 경우에 따라 시속 2백킬로미터도 서슴지 않는다.
평균 속도인 130킬로로 달리는데도 백밀러로 콩알 만하게 뒤따르던 차가 휙 앞질러 가며 좁쌀만하게 시야밖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을 보면 절로 스트레스가 해소될 것 같은 아찔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를 제외하면 그들은 엄격한 사회적 규율과 철저한 자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유럽대륙의 십자로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의 거대하면서도 능률적인 시설을 통과하여 청사 밖으로 빠져 나와 대하게 되는 땅위에서 보는 독일도 녹색의 깨끗함이다.

숱한 관광객들이 찾아드는 파리나 로마의 개인용 자동차들은 덕지덕지 때에 쩌들어 있지만 이 나라 차들은 유럽의 여러나라들에 비해서 그래도 잘 닦여져 있는 편이다. 수시로 내리는 비와 안개 탓인지 먼지와 엉켜서 유럽의 자동차들은 대개 지저분해지기 쉬운 것이다. 그래도 독일이나 스위스 같은 곳에서는 제법 깨끗한 것을 보면 철저하고 근면한 사람들이라는 일반적 인식이 틀림없는 것이다.

대표적 염세주의자로 알려진 쇼펜하워조차도 프랑크푸르트에 대해서는 물 좋고 정다운 분위기를 가진 아름다운 도시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라인강의 큰 지류인 마인강 연변의 평원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다가 푸르름으로 덮인 산과 공원 등 녹지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과 유럽 각지를 연결하는 구심점이기도 하다.
라인-마인-플루크하펜 공항은 독일 뿐만 아니라 유럽 대륙에서도 가장 큰 공항의 하나이다. 연간 1천 8백명정도의 방문객이 이용한다고 하는데, 1분당 1대 꼴의 비행기가 이착륙한다.

시내 중심부에 있는 철도의 본역도 24개 노선이 연결되는 십자로이다.
로마와 파리로 향하는 TEE열차, 코펜하겐, 밀라노, 제네바 등지를 연결하는 IC특급열차 등, 수많은 간선이 이 역에 기착한다.

이 도시의 이러한 역할은 최근에 비롯된 것이 아니다.
유럽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한 자연적, 지리적 여건은 과거의 독일 역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선사시대부터 북유럽과 지중해 지역, 동유럽과 서유럽을 연결하는 교차지점이었다. 16세기부터 수백년 동안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기도 했으며, 1848년에 독일국회가 처음으로 개원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오늘까지 발전을 주도해 온 것은 교통과 금융 및 무역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괴테의 사랑과 그 발자취
그렇지만 독일의 모든 도시가 그렇듯이 프랑크푸르트도 런던이나 로마, 파리 등과 같이 장구하고 빛나는 문화
전통을 갗춘 거대 도시는 아니다. 독일이 하나의 수도를 가진 통일국가로서 존립한 기간은 1871년에 프러시아제국 이래 불과 70여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다가 현재의 연방체제 아래의 독일은 하나의 거대한 도시보다는 각각의 특색을 살리며 균형있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중세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곳곳에 스며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 때의 폭격으로 파괴되고 현대적으로 재건축되어, 얼핏 보기에는 유럽의 도시가 아니라 미국의 대도시를 연상시키는 프랑크푸르트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교통, 무역, 금융의 도시이지만 프랑크푸르트는 괴테가 태어난 문학의 도시이기도 하다.
독일의 자랑이자 인류의 자랑이라고까지 극찬되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를 이 사람들이 소홀히 할리가 없다.
1749년에 괴테가 태어난 집은 사실 폭격에 의해 거의가 파괴되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 벽돌 조각 한장, 창틀조각 하나까지 일일이 모아서 완벽하게 복원하여 독일의 복구기술이 최고임을 증명한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괴테 생가에 있는 가구들은 전쟁 중에 대피시켜 보존했었다고 하니 그 정성 또한 갸륵하지 않을 수 없다. 괴테가 앉았던 의자와 책상도 여기에 그대로 있다.
바로 그 자리에 그렇게 앉아서 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고 ‘파우스트’의 일부를 집필했던 것이다.

“만일 평생동안 한번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자기를 위해서 쓰여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시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불행한 사람일 것”이라고 괴테 스스로가 말했던 바로 그 작품을 쓴 서재를 둘러보며 깊은 감동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책 자체를 읽지 않은 사람 밖에 없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의 북쪽에 있는 베츨라르에서 친구의 약혼녀인 로테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던 소설 속의 베르테르는 사실 괴테 자신의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후 220년. 작품의 무대였던 베츨라르에는 어느 만큼이 소설 속의 허구이고 어느 만큼이 진실인지 모를 정도로 소설이 실제화되어 있다. 로테의 거리도 있고 괴테의 거리라 이름 붙여진 곳도 있다. 로테의 거리 8번지에 위치한 한 집에는 벽에 “1753년 1월 11일 샤를로테 부프가 태어난 집”이라는 글귀마저 새겨져 있다. 소설 속의 베르테르가 동생들에게 빵을 나눠주고 있는 로테를 처음 상면한 바로 그 집이다. 그 소설 속의 장면이 그림으로 그려져 걸려 있고 괴테가 로테에게 보낸 친필 편지도 전시돼 있다. 이 집에서 괴테가 머물던 집까지는 걸어서 5분도 안되는 거리.

권총으로 자살한 소설 속의 베르테르는 괴테 자신이 아니라 이 마을에 살던 다른 친구인 에루자렘을 모델로한 것이다. 역시 이 친구가 살다가 유부녀와의 비련으로 자살을 한 집도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인 권총자살을 할 때 앉았던 책걸상과 쓰러져 죽은 침대가 소설과 실제를 혼동스럽게 만든다.

훌륭한 소설 하나면 이렇게 그 모델들이 관광자원도 되고 감동과 추억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불륜의 사랑도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비련과 사련의 고통 속에서 갈등했던 ‘옛일’도 생생하게 되돌이켜지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아뭏든 괴테는 이 베츨라르를 떠나 고향인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작품을 썼고 이 집은 2백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연간 15만명 가량의 방문객을 맞고 있는 것이다.

(뒷얘기–소설에서의 베르테르는 권총자살을 했지만 실제의 괴테는 샤를로테가 친구인 케스트너–소설 속의 알베르토와 결혼한 후에도 이따금 내왕이 있어 만났었다고 하는데 친구의 심정에 대해서는 어땠는지는 기록이 없다.)

근대사의 숨결 가득하면서도 현대적인 분위기
프랑크푸르트는 또한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가 태어난 도시이기고 하며(일기의 무대는 화란의 암스텔담이다), 만년의 쇼펜하워가 활동했던 도시로, 이들이 살았던 집들에도 기념 팻말이 달려 있다.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와 추억이 될만한 기념물을 소중히 여기며 보존하고 활용할 줄 아는 독일사람들의 의식을 알만 할 수밖에…..부러울 수밖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역사의 자취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뢰머베르그 광장이다.
역시 전후에 재건된 지역이기는 하나, 이 광장 주변에는 15~16세기의 옛모습 주택들이 늘어 서있고 프랑크푸르트를 상징하는 사진감으로 흔히 사용되는 ‘뢰머’라는 건물이 지금도 자치정부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이 뢰머의 2층에는 신성 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나 축하연회장으로 쓰였던 호화로운 연회장 ‘카이저자르’가 지금도 그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다.
뢰머베르그 광장 동쪽에 위치한 ‘성 바톨로뮤 대성당’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선출하고 대관식을 거행했던
곳이다. 중앙부 공간의 가로 세로 길리가 거의 같아 대형홀처럼 느껴지는데, ‘카이저 돔’이라고도 불리우는 95미터의 거대한 고딕 양식의 탑으로 유명하다. 탑 속의 3백여개의 층계를 올라가면 시가지가 굽어보인다.

독일의 역사를 증언하는 또 다른 교회당인 ‘성 바울 교회’도 이 광장 옆 전차가 다니는 큰 길을 향해 서있다.
1841년 처음으로 독일국민의회가 개원된 곳으로 독일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손꼽히며, 지금도 ‘괴테상’ 등 각종 상의 수상식 장소로 흔히 사용된다고 한다.

현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명한 것으로는 각종의 국제적 견본전람회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도심 가까운 곳에 마련된 널찍한 ‘메세(Messe)’ 광장에서는 무슨 전시가 그리도 많은지 국제모피전람회, 자동
차, 의류 직물…등등 각양각색의 산업박람회 비슷한 행사가 쉬임없이 개최되어, 국내에서도 중소 규모의 오퍼상 사업하는 분들은 관심이 가는 아이템이 있을 때면 이곳을 찾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통있는 것으로는 매년 가을에 열리는 서적전시로 출판업자를 위한 전시회로는 전문전시회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일찌기 금속활자를 만들어낸 구텐베르그도 빚에 쪼들리게 되자 자신의 인쇄소를 빚쟁이에게 넘겨주고 이 도시로 찾아왔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황태자의 첫사랑’을 찾아가보는 하이델베르그
프랑크푸르트는 우리네에게 널리 알려진 가곡 로렐라이 언덕을 관광하는 기점이되기도 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한시간쯤 가면 마인츠라는 도시가 나오는데, 여기서 관광선을 타고 본쪽으로 향하는 코블렌츠까지의 64킬로미터의 강줄기가 로렐라이를 포함한 라인강을 관광할 수 있는 보통의 코스이다.
약 다섯시간이 소요되는데 강을 따라 펼쳐지는 푸른 경관과 고성들이 무척 볼만하지만, 시간에 쪼들려 마음이 조급한 사람은 제대로 감상도 못하고 “이까짓 것을 보러왔나”하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한국사람들이 유난히 보고 싶어하는 로레라이 언덕은 번역을 그렇게 해놔서 그렇지 언덕이라기 보다는 강줄기가 급커브하는 사실 별 특징이 없는 낭떨어지 정도의 바위다.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눈요기의 여행은 육체적 사랑 같은 것이고 푸근한 여유와 마음으로 보는 여행은 지루한 짝사랑의 고통 같은 …..

프랑크푸르트 방문 길에 로렐라이와 함께 꼭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 하이델베르그이다.
14세기에 세워진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을 무대로 펼쳐진 ‘황태자의 첫사랑’을 생각하며 “드링크 드링크……”하는 그 음악을 들으며 생맥주 한잔 마셔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 치외법권 지역이던 대학 구내의 감금실, 커다란 맥주통, 오래된 성곽, 낭만으로 뭉쳐졌을 법한 수세기전 대학생들의 낙서자국 등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괴테가 여덟번이나 이곳을 방문했다고 하는데 ‘연애박사’인 그가 로테 이후의 또다른 여인 마리안네와 사랑에 빠졌던 고도이기도 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동차로 2시간쯤 걸리는데, 이곳 하이델베르그에서 출발하여 다시 동쪽으로 내려가 네카르계곡을 거쳐 뉘른베르그까지의 약 3백킬로미터의 육로 여행도 해볼만하다. 수많은 고성과 폐허가 된 성터들이 밀집돼 있어 이 코스를 여행하고 나면 독일의 절반을 본 셈이라는 말도 있는 코스이다.

독일–그 엄격하고 철저한 민족성 틈바구니에서도 싹이 튼 위대한 문학과 철학, 그리고 다시한번 국제사회의화려한 각광을 받으며 일구어낸 통일의 나라가 EC통합 후의 유럽에서 어떻게 또 우리를 놀래줄 것인가?

[원문: 김백순 | 중앙일보 ‘세계를 간다’ 1990. 4. 1. 5면 필자 게재
수정 및 사진 추가게재 2018. 09. 20. 필자 개인블로그와 중복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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